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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표충비 '땀' 1리터 흘려...나라에 무슨일이?

기사승인 2019.11.19  16:5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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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명대사 우국충정 표출
기후변화에따른 결로현상

표충비 전경. <사진제공>

(밀양=포커스데일리) 김성원 기자 = 국가에 큰 일이 있을 때마다 '땀'을 흘리는 것으로 유명한 경남 밀양의 표충비(사명대사비)에서 18일 또 다시 '땀'이 흐르는 현상이 목격됐다.

경남 밀양시에 따르면 밀양시 무안면 무안초등학교 인근 홍제사 경내에 있는 ‘표충비’에서 18일  새벽 4시부터 오후 1시쯤까지 1ℓ가량의 땀같은 물방울이 흘러내렸다는 것이다.

홍제사 관계자는 "18일 새벽 4시쯤부터 오전 9시까지 5시간 가량 표충비에서 땀이 흘러내렸다"며 "9시가 지나자 땀이 멈추고 비석이 말랐다"고  말했다.
 
사명대사비로도 불리는 '표충비'는 임진왜란 때 국난을 극복한 사명대사의 높은 뜻을 새긴 비석으로 1742년(영조 18년) 사명대사의 5대 법손 남붕 스님이 경북 경산에서 돌을 가져다가 높이 2.7m, 너비 96㎝, 두께 54.5㎝의 비각을 세웠다.

사명대사는 서산대사 등과 함께 조선시대에 승려 신분으로 나라를 구하는 일에 앞장선 승병장이다. 

밀양시 무안면에 표충비가 세워진 것은 이곳이 사명대사의 출생지이기 때문이다.

임진왜란이 끝나자 조정에서는 당시 의병장으로 공을 세운 사명대사를 불러 포로 귀환 임무를 줬다. 스님은 일본에 들어가 협상 끝에 3000여명의 포로를 송환하는 데 성공했다. 이런 이유로 사명대사의 우국충정이 지금까지도 표충비에 남아 있어 국가에 큰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땀을 흘린다는 이야기가 전승되고 있다.

이 때문인지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마다 비석에 '땀같은 물방울'이 맺혀 세상의 관심을 끌어 왔다.

그동안 표충비는 1894년 동학농민운동 땅시 3말 1되(약 56ℓ)의 땀을 흘리기 시작해 1919년 3.1 독립만세운동, 1945년 8·15광복 3일 전, 1950년 6·25전쟁 당시 각각 3말 8되(약 68ℓ)를 흘렸다. 가장 많이 흘린 시기는 1961년 5·16 쿠데타 5일 전 5말 7되 (약 102ℓ)가 흘러내린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 1985년 남북고향 방문 무렵에도 흘렸다는 기록이 있으며, 최근에는 2008년 FTA 소고기 협상, 2009년 김수환 추기경 선종, 2010년 천안함 침몰,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당시에도 땀을 흘렸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전문가들은 이 현상을 기후 변화에 따른 현상이나 비석 자체의 결로현상으로 추정만 하고 있을 뿐 정확한 과학적인 규명은 지금까지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김성원 기자 ulruru5@ifocus.kr

<저작권자 © 포커스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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