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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 아들 장호준 목사 조국 딸에 응원 글

기사승인 2019.09.01  17:3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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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호준씨 페이스북 캡쳐

(서울=포커스데일리) 이현석 기자 = 고 장준하 선생의 3남인 장호준 목사가 1일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 딸에게 격려의 글을 전했다.

자신을 미국 커네티컷 맨스필드 타운에서 스쿨버스 운전사로 살아가고 있는 장호준이라고 소개한 장 목사는 최근 조양의 아버지가 겪고 있는 일들에 대한 소식을 접하면서 조양이 당하고 있을 일에 더욱 화가 났고 많이 아팠다고 서두를 꺼냈다.

그러면서 몇 번의 망설임 끝에 그저 동네 아저씨가 해주는 이야기 정도로 들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 글을 보낸다며 페이스북에 글을 적었다.

그는 자신이 고 장준하의 아들로 자라면서 겪었던 힘든 상황들을 전하면서 아버지 이름을 꺼내는 것이 싫었던 기억도 털어놨다.

특히 학교와 군대에서 요시찰 대상이 되어 부당한 압박을 받았던 것도 내가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것 때문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하지만 아버지의 이름은 내게 큰 혜택을 주기도 했기에 신학교를 다니던 시절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해외 후원금을 받으며 암울했던 시절을 버텨낼 수 있었던 것 역시 자신이 아버지의 아들이었기 때문이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어 그럼에도 아버지의 이름은 늘 내게 족쇄가 돼 부담과 고통을 감수하도록 했었다"고 덧붙였다.

장 목사는 "지금은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는 딸아이가 언젠가 내게 '아빠, 초등학교 때 내가 왜 학교 앞에서 불량식품을 못 사 먹었는지 알아? 장준하 선생님의 손녀가 길거리에 그런 것을 사 먹는다고 할까 봐 안 사 먹었던 거야'라고 하는 말을 들었을 때 아무런 말도 못 한 채 고개만 끄덕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내 아버지의 이름이 내 아이에게까지 시치미가 되고 있다는 것에 가슴이 아려왔기 때문이었다."고도 했다.

조 후보자 딸에게 장 목사는 "마음 어느 한구석에서는 '하필 내가 왜 조국의 딸이어서'라는 소리가 들리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그래, 내 아버지가 조국이다.'라는 소리가 더 크게 외쳐지리라 믿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물론 나는 조양에게 '괜찮아질 거예요. 힘내세요.'라든가 '참고 기다리면 다 지나갈 거예요'라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다만 "지금 조양의 아버지에게 하이에나처럼 달려들고 있는 자들로 인해 조양이 겪고 있을 아픔의 시간들을 자랑스럽게 삶속에 새겼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전했다.

장호준 목사는 "자랑스러운 아버지의 자랑스러운 딸, '그래 내가 조국의 딸이다.'를 더욱 크게 외치는 조양이 되리라 믿으며...."라며 응원과 격려의 글을 마무리했다.

고 장준하 선생은 1953년부터 월간 <사상계>를 발행, 지속적으로 자유·민주·통일·반독재 투쟁에 헌신했다. 

독재로 치닫는 박정희정권과 맞섰고, 1975년초에는 민주회복을 위한 범민주세력의 단합을 강력히 촉구, 재야세력의 확고한 구심점이 되기도 했다. 1962년 막사이사이상을 받았다. 

1945년 1월 광복군에 가담했고, 11월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의 수행원으로 입국, 김구의 비서, 비상국민회의 서기 및 민주의원 비서 등을 역임했다.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독재에 항거하다가 투옥되기도 했다. 1975년 의문사했다.

이현석 기자 nkc1@ifocus.kr

<저작권자 © 포커스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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