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배(문학박사ㆍ칼럼니스트) |
지난 17일 자유한국당 김세연 의원의 통렬한 자당 비판은 지지든 반대자든 귀를 의심케 하기에 충분했다. 뜻밖에 신선할 뿐만 아니라 나름 핵심을 짚고 있기 때문이다. 주변 얘기다. "저당에 저런 분이 있었나!"
한국당이 버림받은 것은 오래된 일이지만 조국사태로 혹시나 기사회생할 수 있지 않을까 주목 받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회생은커녕 지지율은 정체되고 지도부는 엉뚱한 승리감에 기고만장하는 희한한 일을 벌였다.
한국당 의원들에게는 공감능력도 소통능력도 없으며 스스로 보수의 가치라고 주장하는 희생과 헌신과 책임은 더더욱 찾기 어렵다. 김의원 말처럼 한국당이 수명을 다한 "좀비 같은 존재"로 보이는 까닭이다.
김의원이 오죽했으면 '먹던 물에 침을 뱉었을까!' 3선의 전도유망한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하면서까지 말이다. "세상 바뀐 걸 모르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되는 게 섭리"이고 그것을 거스르면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라는 그의 말에서 충심이 느껴진다.
사망선고를 받은 한국당을 해체하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김의원의 비장한 주장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새로운 기반에서, 새로운 기풍으로, 새로운 정신으로, 새로운 열정으로" 시작한다면 한국정치의 새장이 열릴 수도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국민은 정치적 계절이 올 때마다 '세대교체' '환골탈태' '체질개선' '낡은 인물 정리' '참신한 인재 영입' 등등 얘기를 수없이 들어왔다. 김의원의 주장은 그것보다 좀 더 나아가야 한다는 절박함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새롭다.
그러나 아쉬운 대목도 있다. 김의원의 절규를 공감하고 지지하면서도 정작 뼈아픈 성찰과 근본적 변화가 요구되는 '결정적 내용'은 빠뜨리고 있다는 생각에서다.
김의원도 한국당도 진정으로 새롭게 출발하고자 한다면 모든 변화의 기본 전제인 역사인식과 정치문화 자체를 바꿔야 한다. '불편한' 과거를 인정하고 '억지스런' 역사를 만들지 말고 '독자적으로' 미래를 그려내라. '신화의 역사'를 껴안고 있는 한 결코 새 길을 열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당과 그 지지자들은 "나라가 무너지고 있다"는 말로 문재인 정부를 비판한다.
김의원도 예외는 아니다. 정치적 전략적 측면에서야 그런 구호를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하지만 이미 역사의 죄인이 된 그래서 다수 국민에게 조롱 받고 있는 세력이 할 말은 아니다.
한국당이 '뼛속까지' 바꿀 수 있을까? 김세연 의원의 선언이 변화의 '밀알'이 될 수 있을까? 정말로 "백지에서 새롭게 시작하자"는 각오라면 속는 셈치고 지켜 볼 수 있다.
지금의 한국정치에서 절실한 것은 건강한 보수의 '탄생'이라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김세연 의원의 '화두'를 주류 수구언론의 태도에 비추어 보면 기대보다 한숨이 앞선다. 그들도 이구동성 김의원의 주장에 동의한다. "틀린 말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거기까지다.
그들은 여전히 냉전적 심성에 갇혀 독립국 대한민국이 아니라 동맹국 미국의 눈으로 세상을 보며 진실과 변화를 외면한다. "지소미아 파기 후폭풍 감당할 수 있나," "한미 훈련 연기, 북핵 폐기 위한 건가 선거용 쇼 때문인가," "지소미아 연장하고 한미동맹 정상화하라."
지적 수준은 차치하고 국적을 의심케 하는 낯뜨거운 주류 보수 참칭 수구 언론의 주장이다.
세상 바뀐 걸 모르고 환경에 적응 못하면 도태되는 게 섭리라는 김의원의 고언은 한국당만이 아니라 이미 좀비의 대명사로 낙인찍힌 주류 수구언론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김세연 의원의 선언을 계기로 한국당과 주류 수구언론은 '존재가 민폐'라는 조롱을 받지 않도록 역사인식을 바꾸고 변화를 수용하여 민족의 미래를 그려내는 진짜 보수로 거듭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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